물론 김영삼 대통령 때 금융실명제나 하나회 척결처럼 전격 단행한 개혁도 있었다.
외교관(노창희)의 술회다.이번엔 한·미·일 협력 강화가 옳은 방향이다.
고정애 Chief에디터 한국과 대만의 미래 관계에 대해 말해 달라.사실 한국이 명동에 있는 대사관을 중국에 넘겨줬을 때 많은 대만 사람이 상처받았다.1919년 상하이 임시정부 수립 후 대일본항쟁에서도 중화민국 또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 임시정부를 적극 지원해 왔다.
양국 수교 후 50년대 초에는 한국이 양식 부족으로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때 김신 대사의 요청으로 장 총통이 식량을 지원한 바도 있다.단교를 며칠 앞두고서야 대만대사에게 한·중 간 실질적 진전(substantial progress)이 있다고 언질을 줬다.
대만 다루기엔 미흡했다.
장 총통의 최측근이자 초대 한국대사 샤오위린은 대사관저가 김구 선생이 살던 곳인 걸 알곤 암살 장소인 서재를 침실로 바꾸고 꿈에서라도 김구 선생을 만나길 고대했다.옳더라도 서두르면 탈이 난다.
정부가 열심히 하고도 점수를 못 따는 이유다.독립운동 최고의 전과를 올린 청산리 전투의 홍 장군을 욕보이는 일이다.
지난달 말 한국리서치 등의 조사에선 21%에 달했다.논란이 꼬리를 물게 된다.